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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속 먹거리

[폭싹 속았수다] 속 제주 향토음식이 전해주는 감성과 그리움

by 빼둘레햄 2026. 6. 17.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선배가 그렇게 절절하게 권유하는데도 두 달 넘게 《폭싹 속았수다》를 보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일로 직장에서 대기 발령을 받은 선배가 "이 드라마로 버텼다"고 말했을 때도, 왠지 나중에 천천히 보면 되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장지 모텔방에서 혼자 틀었다가 예상치 못하게 많이 울었습니다. 집이었다면 마음 놓고 울지도 못했을 텐데, 그 혼자인 공간이 오히려 다행이었습니다. 드라마 속 제주 음식들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도를 담은 것들이라는 걸, 그날 밤에야 실감했습니다.

 

제주 향토음식이 말해주는 것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자꾸 이런 생각이 드지 않으셨습니까. "저거 예전에 우리 집에서도 먹던 거 아닌가?" 하고요.

 

제주 향토음식의 뿌리는 섬이라는 지형적 고립에 있습니다. 육지와 단절된 환경에서 섬 사람들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살림을 꾸렸고, 그 결과가 지금 우리가 여행지에서 만나는 음식들입니다.

 

고기국수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돼지 뼈와 고기를 장시간 우려내어 만든 육수에 소면을 넣고 수육을 얹어 내는 이 음식은, 제주에서는 잔치국수로도 불렸습니다.

 

여기서 잔치국수란 결혼식이나 마을 행사가 끝난 뒤 손님들에게 대접하던 음식으로, 오늘날로 치면 연회 음식(catering)에 해당하는 개념입니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외식 메뉴가 됐지만, 제주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날의 기억이 여전히 국물 안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몸국 역시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 몸국의 주재료인 모자반은 갈조류(褐藻類)의 일종입니다. 갈조류란 바닷속 엽록소 외에 갈색 색소를 함께 지닌 해조류를 말하는데, 제주 근해에서 자연 채취가 가능한 대표 식재료입니다.

 

이 모자반을 돼지 육수에 넣고 오래 끓여낸 것이 몸국인데, 처음 먹는 사람은 특유의 바다 향이 낯설 수 있습니다. 저도 제주 음식에 익숙하지 않은 분이라면 몸국보다 고기국수를 먼저 권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제주 사람들이 해장 음식으로 오래 즐겨온 배경을 알고 나면, 그 투박한 향이 오히려 정겹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주 향토음식의 핵심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재료의 원산지가 제주 근해 또는 제주 농가에 한정되어 있어 지역 고유성이 강함
  • 조리법이 단순하고 양념이 과하지 않아 식재료 본래의 맛을 살리는 방식
  • 가족이나 마을 공동체 행사와 결부된 음식 문화(food culture)가 오늘날까지 이어짐
  • 흑돼지, 갈치, 모자반 등 제주 특산 식재료가 중심 역할을 함

제주특별자치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제주 재래 흑돼지는 일반 개량종 돼지보다 근육 내 지방 함량이 높아 풍미가 깊고 육질이 쫄깃한 특성을 보인다고 합니다. 흑돼지 구이 전문점이 제주 전역에 늘어난 것은 이 육질적 차별성이 외지 소비자들에게 분명하게 통한 결과입니다.

드라마가 건드린 것, 음식이 아니라 그리움

《폭싹 속았수다》를 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마음에 걸렸던 장면은 주인공들이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게 왜 그렇게 마음에 와 닿았을까요? 아마 너무 우리네 일가친척 이야기 같았기 때문일 겁니다.

 

드라마 속 음식들은 화려한 플레이팅(plating)과는 거리가 멉니다. 플레이팅이란 음식을 그릇에 담을 때 시각적 완성도를 고려해 배치하는 기술로, 최근 외식업계에서는 중요한 경쟁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속 제주 밥상에는 그런 계산이 없습니다. 그냥 많이, 따뜻하게 담아냅니다. 예전에는 없어서 먹던 음식들이었는데 지금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수십만 원짜리 코스 메뉴로 재해석된 경우가 많습니다. 제주 흑돼지나 은갈치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갈치조림 하나에 제주 현지 전문점 기준으로 2인분에 5만 원이 넘는 경우도 이제는 흔합니다.

 

이 지점이 저는 좀 씁쓸합니다. 식재료의 프리미엄화(premiumization), 즉 서민 식재료가 희소성과 브랜드를 입고 고급 상품으로 전환되는 현상이 제주 음식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작 그 음식이 가진 진짜 가치는 정성과 사람 사이의 온도인데, 가격표가 붙는 순간 그 온도는 희미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도시에서 살다 보면 골목 식당에서 느끼던 손맛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은 저만의 이야기가 아닐 겁니다.

동문시장을 여행 코스로 추천하는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흑돼지 꼬치, 오메기떡, 전복 버터구이 같은 것들이 여행자 입장에서는 간식이지만, 시장 골목에서 파는 방식 자체가 제주 생활문화의 한 단면입니다.

 

오메기떡은 차조를 주원료로 만드는 제주 전통 떡입니다. 차조란 글루텐이 없는 잡곡으로, 밀가루 반죽과 달리 특유의 쫀득한 식감을 만들어냅니다. 제주에서는 오랫동안 쌀 대신 잡곡 농사를 지어온 역사가 있어, 오메기떡은 그 농경 문화(agricultural culture)의 흔적이기도 합니다.

 

한국민속촌 민속 자료에 따르면 제주 차조 문화는 조선시대 이전부터 섬 생활의 기반 작물로 이어져 온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드라마 한 편이 음식 여행을 떠나게 만들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데 모텔방에서 울면서 봤던 그 밤 이후로, 제주 음식이 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화려한 레스토랑보다 동문시장 골목을 먼저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고기국수 한 그릇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저녁에는 흑돼지 앞에서 일행과 이야기를 나눠보십시오. 음식이 맛있어서 기억에 남는 게 아니라, 그 음식을 함께 먹은 사람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는 걸 《폭싹 속았수다》가 조용히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허접한 음식이라도 정이 있는 사람들과 먹던 그 시절이 그리운 분이라면, 제주 한 끼가 그 감각을 잠시 되살려 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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