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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씨에 보기좋은 넷플릭스 [카틀라] 그리고 '아이슬란드'

by 빼둘레햄 2026. 6. 16.

더운 여름날 에어컨 앞에서 무언가 묵직하게 빠져드는 드라마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연히 틀었던 것이 넷플릭스 《카틀라》였습니다. 36개국에서 1위를 기록한 아이슬란드 오리지널 시리즈인데, 저는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화산재 속에서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멀쩡히 돌아온다는 설정만 봤을 때는 단순한 미스터리물이겠거니 했거든요. 그런데 보다 보니 이 드라마는 인간의 상실과 욕망이라는 훨씬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카틀라 화산이 만들어낸 복제인간 서사, 그 과학적 상상력

《카틀라》의 핵심 설정은 화산 분화(volcanic eruption) 이후 사망자와 동일한 외형과 일부 기억을 가진 존재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 안에서 연구원 캐릭터는 이를 세포복제(cell replication) 현상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세포복제란 특정 물질이 유기체의 세포 구조를 그대로 재현해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가리킵니다. 드라마의 논리상 화산재 속 미지의 물질이 이 반응을 촉발한다는 것인데,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느낀 건 SF적 상상력이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현실성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로 카틀라(Katla)는 아이슬란드 남부에 실재하는 활화산입니다. 빙하 아래에 위치한 이 화산은 현재도 지질학자들이 지속 모니터링하는 위험 등급 화산입니다. 아이슬란드 기상청(Veðurstofa Íslands)에 따르면 카틀라는 약 40~80년 주기로 분화해왔으며, 마지막 대규모 분화는 1918년이었습니다.

 

드라마는 이 역사적 분화 주기를 그대로 설정에 녹여, 200년 전, 100년 전, 그리고 현재라는 반복 구조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단순한 픽션이 아니라 실제 지질학적 사실을 창작의 뼈대로 쓴 방식이 꽤 인상 깊었습니다.

 

드라마 속 복제인간들을 유형별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20년 전 사망한 호텔 직원 군닐드: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외형, 기억 일부 보유
  • 1년 전 실종된 주인공의 언니 아우사: 실종 직전까지의 기억만 남아 귀환
  • 주인공 그림마의 복제인간: 원본보다 더 밝은 성격으로 가족 관계에 균열을 일으킴
  • 경찰서장 기슬리 아내의 복제인간: 병들기 이전 건강한 모습으로 등장

각각의 복제인간이 원본과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남은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딜레마를 안겨준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진짜 힘입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됐던 건 경찰서장 에피소드였습니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 대신 건강하던 시절의 아내가 나타났을 때, 그는 기적이라며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병든 아내를 방에 가두고 건강한 복제인간의 약을 바꿔치기하는 선택을 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쉽게 자신의 욕망을 '신의 뜻'으로 포장하는지 섬뜩할 정도로 공감이 됐습니다.

 

카틀라 촬영지 아이슬란드

드라마의 배경, 아이슬란드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이유

드라마를 보는 내내 스토리보다 풍경에 먼저 빠진다는 분들이 많은데, 저도 그 부분에서 완전히 동의합니다. 아이슬란드 남부의 마을 비크(Vík)는 인구 약 300~500명 규모의 소촌입니다. 북대서양을 마주하고 빙하를 등지고 있는 이 마을은 화면에 담기는 것만으로 이미 다른 행성 느낌을 줍니다.

 

지형학적(geomorphological) 관점에서 비크 일대가 독특한 이유는 빙하, 화산, 해안이 동시에 접하는 복합 지형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복합 지형이란 서로 다른 지질 작용이 동일한 공간에 겹쳐 나타나는 지형 형태를 뜻합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는 지역은 극히 드뭅니다. 특히 레이니스피야라(Reynisfjara) 해변의 검은 현무암 모래는 화산 분출물이 수천 년에 걸쳐 해안으로 퇴적된 결과물입니다. 여기서 현무암(basalt)이란 마그마가 지표면에서 급격히 냉각되면서 굳어진 화산암의 일종으로, 아이슬란드 국토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암석입니다.

 

지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아이슬란드는 이른바 빙화산 공존 지형(glaciovolcanic terrain)이라는 독특한 생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빙화산 공존 지형이란 활화산과 빙하가 지리적으로 중첩되어 있는 지역을 말하며, 화산 분화 시 빙하가 급격히 녹아 대홍수를 일으키는 요쿨하울프스(Jökulhlaup) 현상을 유발합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홈페이지에 따르면 아이슬란드는 지질학적 다양성과 자연경관을 이유로 세계 각국 연구자들이 지속적으로 방문하는 지구과학 현장 연구지입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도 머릿속에 남는 건 범인이 누구냐는 결말이 아니라 그 풍경이었습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지구라는 행성 위에 아직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공간들이 많다는 걸 새삼 실감했습니다.

 

둥근 지구를 평면 지도에 억지로 펼치다 보니 극지방에 가까운 나라들은 실제보다 훨씬 크거나 작게 왜곡되는데, 아이슬란드도 그런 나라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가보지 않으면, 아니 드라마 한 편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그 실재감이 잘 와닿지 않습니다.

 

 

《카틀라》가 36개국에서 1위를 했다는 수치는 단순히 마케팅 수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 상실 이후에도 계속 존재해야만 하는 인간이라는 주제는 어느 나라 시청자에게도 공명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를 아직 안 보셨다면 스토리 요약보다 먼저 그냥 한 번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처음 5분 안에 화면이 주는 압도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다 보고 나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이 생각보다 오래 남습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카틀라》는 그 버킷리스트에 불을 지피는 데 충분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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