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강릉을 그냥 바다 보러 가는 곳으로만 생각하시진 않겠죠? 도깨비 촬영지라는 타이틀이 붙어도 "어차피 방파제 하나 보고 끝 아닌가"라고 가볍게 넘겼는데, 막상 다녀오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드라마가 방영된 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도깨비 드라마의 기억과 함께 더위를 식히고 있더라고요.
10년 전 드라마가 지금도 사람을 불러모으는 이유
일반적으로 촬영지 여행은 드라마 인기가 식으면 자연스럽게 줄어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주문진 방파제는 달랐습니다. 제가 직접 가봤을 때, 평일인데도 삼삼오오 모여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여기서 작동하는 것이 소위 '성지순례(Pilgrimage Tourism)'입니다. 성지순례란 단순히 장소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콘텐츠와 연결된 감정적 경험을 재현하고자 하는 여행 형태를 말합니다. 팬덤 기반 관광이라고도 부르는데,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지를 방문하며 그 서사에 스스로를 투영하는 것이죠.
주문진 방파제가 10년 넘게 유효한 이유는 단순히 방송이 유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드라마 도깨비 자체가 세대를 이어 계속 소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콘텐츠 관광(Contents Tourism)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콘텐츠 관광이란 영화, 드라마, 음악 등 미디어 콘텐츠가 관광 수요를 창출하는 현상으로, 일본에서 먼저 학술적으로 정리된 개념입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강릉은 드라마 도깨비 방영 이후 외국인 방문객 수가 유의미하게 증가한 대표 사례로 분류됩니다.
저는 솔직히 10주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게 뭐가 대수야"라고 생각했는데, 당시 출연 배우 4명이 별 탈 없이 모두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제로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그게 얼마나 희귀한 일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습니다.

기대와 실제가 달랐던 부분들
"주문진 방파제가 도깨비 촬영지 중 핵심"이라는 말은 맞는데, "규모가 크고 압도적"이라는 인상은 제 경험상 좀 다릅니다. 실제로 가보면 생각보다 아담합니다. 드라마에서 워낙 근사하게 찍혀서 거대한 곳을 상상했다면, 처음엔 살짝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느끼는 감성은 화면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있습니다. 방파제 끝에 서면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이는 구도가 나오는데, 이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개방감을 줍니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면 이른 아침을 추천합니다. 오전 6~7시대에 가면 역광이 줄어들고 배경이 깔끔하게 나옵니다. 제가 직접 두 번 방문해봤는데, 오전 방문이 훨씬 나았습니다.
주문진 방파제 외에도 강릉은 경포해변, 안목해변, 사천해변 등 각기 다른 성격의 해변을 품고 있습니다. 경포해변은 규모가 크고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가족 단위 방문에 적합하고, 안목해변은 카페 집적 지구(coffee street cluster)로 불리며, 바다 전망과 커피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상업화된 해변입니다.
카페 집적 지구란 특정 업종의 상점이 한 구역에 밀집되어 시너지 효과를 내는 상권 형태를 의미합니다. 안목 커피거리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커피 한 잔 마시면서 파도 소리 듣는 경험이 생각보다 꽤 비일상적인 기분을 줍니다.
강릉시 관광 통계에 따르면 강릉을 방문하는 여행객의 1인당 평균 체류 시간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입니다. 단순 경유가 아닌 머무는 여행지로 기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강릉여행, 이렇게 짜면 덜 후회합니다
일반적으로 강릉 당일치기도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당일치기로는 반도 못 봅니다. KTX로 2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주문진과 경포해변은 거리가 꽤 되기 때문에 이동 시간만 잡아도 상당합니다.
제가 추천하는 1박 2일 동선은 다음과 같습니다.
- 1일차: 주문진 방파제 → 주문진 수산시장 → 경포해변 → 안목 커피거리
- 2일차: 오죽헌 → 경포대 → 초당순두부마을 → 강릉 중앙시장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생가로, 사적 제165호로 지정된 문화재입니다. 역사 공간이지만 정원이 잘 가꿔져 있어 억지스럽지 않게 둘러볼 수 있습니다.
먹거리 쪽에서는 초당순두부를 아침으로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초당순두부는 해수 두부(seawater tofu)의 일종으로, 간수 대신 동해 바닷물을 사용해 응고시킨 강릉의 전통 방식입니다. 해수 두부란 미네랄이 풍부한 바닷물을 응고제로 활용하여 일반 두부보다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처음 먹어봤을 때 생각보다 훨씬 깔끔해서 놀랐습니다.
장칼국수도 강릉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입니다. 이건 다른 지역에서는 잘 볼 수 없는 방식인데, 된장 계열 베이스에 칼칼함이 더해진 국물 맛이 독특합니다. 처음 메뉴를 봤을 때 "이게 그냥 칼국수 아닌가" 싶었는데, 먹어보고 나서 왜 강릉 사람들이 자랑하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강릉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드라마 촬영지라는 기대치를 '장소 확인'보다 '분위기 흡수'에 맞춰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방파제 자체는 작을 수 있어도, 그 앞에 서면 분명히 뭔가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도깨비가 10년이 지나도 사람들을 강릉으로 불러모으는 건 결국 그 감정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직 못 가봤다면, 올해 한 번 다녀오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