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나의 아저씨] 속 을지로 노포여행

by 빼둘레햄 2026. 6. 22.

《나의 아저씨》를 처음 볼 때는 을지로가 그렇게 중요한 공간인 줄 몰랐습니다. 그냥 오래된 동네구나 했는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야 그 골목이 단순한 배경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 안에 오래 묵혀뒀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을지로의 낡은 노포 식당들이 왜 사람들을 울리는지, 저는 직접 겪어봐서 압니다.

 

을지로 노포식당

을지로, 그리고 아무도 설명 못 한 위로의 정체

이제 막 서른이 됐을 때였습니다. 몸 상태가 심상치 않아 미루고 미루다 대학병원 문을 두드렸는데, 의사가 던진 한마디가 저를 얼어붙게 만들었습니다. 신장(콩팥)이 완전히 망가졌으니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고요.

 

여기서 투석이란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기계로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내는 치료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평생 기계에 몸을 연결해야 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은 황당하게도 쨍했습니다. 억울하고 서글픈 마음에 길 한복판에서 그냥 엉엉 울었습니다. 행인들이 지나쳐도 상관없었습니다. 한참을 울다가 정신을 차리고 어찌어찌 발걸음을 옮겨 들어간 곳이 병원 바로 옆 작은 한식집이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또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일하시는 분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제 자리 주변을 다른 손님들 시선이 닿지 않도록 가려줬습니다. 아무 말도 없이. 제 울음이 잦아들고 나서야 밥상을 들고 오셔서 딱 한마디 하셨습니다.

 

"먹어요. 먹어야 살 수 있는 거야." 어깨를 한 번 토닥이고는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그게 전부였는데, 제가 경험한 위로 중에 가장 컸습니다. 지금은 그 식당이 제 단골입니다.

 

《나의 아저씨》를 보면서 그 장면이 계속 겹쳤습니다. 드라마 속 을지로의 노포들이 단순히 오래된 식당으로 등장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조용히 붙잡아주는 공간으로 그려지는 이유를 몸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노포란 단어는 한자 '老鋪(늙을 노, 가게 포)'에서 왔습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가게를 뜻하는데, 단순히 오래된 것을 넘어 그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의 희로애락을 목격해온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을지로에 유독 노포가 많이 남아 있는 이유는 이 일대가 공구상가, 인쇄소, 철물점이 밀집한 산업 지구였기 때문입니다. 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먹여 살린 식당들이 지금도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힙지로의 이면, 젊은 세대가 노포를 찾는 진짜 이유

요즘 을지로는 '힙지로'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힙지로란 '힙(hip)'과 '을지로'를 합친 말로, 트렌디한 감성과 옛 골목의 정취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인식된 을지로를 가리킵니다.

 

SNS에서 인증샷 명소로 퍼지면서 국내외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 제가 직접 다녀보니 그 인기가 단순히 사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서울 관광 트렌드 조사에 따르면 최근 여행자들 사이에서 로컬 식문화 체험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핫플레이스보다 진짜 서울 사람들의 일상이 녹아 있는 공간을 원하는 흐름인데, 을지로 노포 거리가 그 수요에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을지로 노포를 제대로 경험하려면 시간대가 중요합니다. 점심 시간에는 백반집이, 저녁 이후에는 골목 술집이 활기를 띱니다. 백반이란 밥과 국, 여러 가지 반찬을 한 상에 차려내는 한식 정식의 일종으로, 매일 반찬 구성이 달라지는 가정식 스타일이 특징입니다. 집밥에 가장 가까운 외식이라고 보면 됩니다.

 

특히 노포 백반집은 식재료를 미리 대량 조리해 두는 방식이 아니라, 그날그날 재료에 따라 상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아 같은 집을 여러 번 가도 매번 조금씩 다른 맛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을지로 노포 탐방 시 알아두면 좋은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을지로3가역, 을지로4가역 주변 골목이 노포 밀집 지역입니다.
  • 점심 피크는 오전 11시 30분~오후 1시로, 이 시간 전후로 방문하면 대기가 짧습니다.
  • 현금 결제만 받는 노포가 아직 많으니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 저녁 술집은 예약 없이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라 이른 저녁에 방문하는 편이 낫습니다.

드라마와 현실 사이, 을지로가 남기는 것

《나의 아저씨》 이후 을지로를 배경으로 한 여행 콘텐츠가 크게 늘었습니다. K-드라마의 해외 파급력이 관광 수요로 이어지는 현상을 문화관광연구원에서는 '드라마 투어리즘(drama tourism)'이라고 부릅니다.

 

드라마 투어리즘이란 특정 드라마의 배경이 된 지역을 직접 방문하여 작품의 감성을 체험하려는 여행 형태를 의미합니다. 《나의 아저씨》 방영 이후 을지로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현장의 이야기는 이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데 제가 솔직히 걱정되는 부분이 하나 있습니다. 을지로가 유명해지면서 오래된 건물들이 개발 압력을 받고 있고, 수십 년을 버텨온 노포들이 임대료 상승으로 하나둘 사라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힙지로가 되어 사람이 몰리는 것이 노포에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선균 씨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드라마를 다시 꺼내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협박 피해자임에도 포토라인에 서야 했던 그 과정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그리고 언론과 온라인에서 무분별하게 쏟아진 보도들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분합니다.

 

《나의 아저씨》가 위로에 대한 드라마라는 점이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집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을지로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서울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을지로 골목을 한 번쯤 천천히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노포 백반집에서 밥 한 끼를 먹고, 오래된 간판 아래 앉아 잠깐 멍을 때려보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얻고 돌아올 수 있는 곳입니다. 화려하지 않아서 오히려 오래 기억에 남는 곳이 있다는 걸, 저는 그 한식집 아주머니 덕분에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 블로그 소개 🔒 개인정보처리방침 ⚠️ 면책사항
© 2026 영화와 드라마 속 음식 이야기.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