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2002년 전까지만 해도 월드컵 공동 개최라는 개념 자체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 해 프랑스 팀 관계자들을 안내하면서 처음으로 '축구 대회'가 아니라 '국가라는 상품을 파는 무대'라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2026년에 미국, 캐나다, 멕시코 세 나라가 공동 개최에 나서는 이유, 그리고 그 축제를 더 풍부하게 즐기는 방법을 제 경험과 함께 풀어봤습니다.
공동 개최는 우정이 아니라 계산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분들은 두 나라가 사이좋게 손을 잡은 미담처럼 기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시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니, 공동 개최는 아름다운 협력이라기보다 아주 현실적인 타협에 가까웠습니다.
FIFA의 입장에서 개최국 선정은 일종의 호스트 네이션 마케팅(host nation marketing)입니다. 여기서 호스트 네이션 마케팅이란 개최국의 도시와 문화, 인프라를 전 세계 방송 화면에 노출시켜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효과를 거두는 전략을 말합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이 기회를 원했고, 어느 쪽도 양보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FIFA는 두 나라 모두에게 반쪽씩 나눠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로 생긴 첫 번째 갈등이 바로 대회 명칭 표기 순서였습니다. 어느 나라 이름이 먼저 오느냐는 단순한 알파벳 순서 문제가 아닙니다. 개막전 개최지, 결승전 개최지와 함께 스포트라이트 배분의 핵심 지표로 작용했습니다. 경기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자존심 싸움은 이미 연장전에 들어간 셈이었습니다.
2002년 이후 월드컵은 독일, 남아공, 브라질, 러시아, 카타르로 이어지며 단독 개최 체제로 돌아갔습니다. 공동 개최가 효율적으로 들리지만 실제 운영은 법 체계, 입국 절차, 보안 시스템, 교통 인프라를 두 나라가 맞춰야 하는 복잡한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48개국 체제가 공동 개최를 다시 불렀다
2026년에 공동 개최가 24년 만에 부활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상품 자체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2026 FIFA 월드컵은 기존 32개국 체제에서 48개국 체제로 확대됩니다. 여기서 48개국 체제란 참가국 수가 늘어나면서 경기 수가 기존 64경기에서 104경기로 대폭 증가한 새로운 대회 포맷을 말합니다. 경기장도 더 많이 필요하고, 개최 도시도 더 많이 필요하고, 방송 시간도 더 늘어납니다.
한 나라가 이 규모를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서면서 미국, 캐나다, 멕시코 북미 3국 공동 개최라는 모델이 선택된 것입니다. 2026년 총 16개 개최 도시 가운데 미국 도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026 월드컵 북미 3국 주요 개최 도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멕시코: 멕시코시티(아스테카 스타디움), 과달라하라, 몬테레이
- 미국: 뉴욕/뉴저지, 로스앤젤레스, 달라스,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보스턴, 캔자스시티, 애틀랜타, 마이애미, 휴스턴, 필라델피아
- 캐나다: 밴쿠버, 토론토
2002년이 '누구 하나 탈락시키기 어려워서' 나온 타협이었다면, 2026년은 '규모가 너무 커져서 돌아온 모델'에 가깝습니다. 출발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앞으로 2030년 월드컵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가 주 개최국이 되고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에서 100주년 기념 경기까지 열리면서 사실상 세 대륙에 걸친 이벤트가 됩니다. 단독 개최가 원칙이던 시대가 서서히 끝나고 있다는 신호로 보는 시각도 있고, 저도 그 판단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개최도시를 알아야 경기가 두 배로 재미있다
제가 2002년에 맡았던 일은 프랑스 팀 관계자들의 한국 체류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경기는 90분이지만, 그분들은 몇 주를 이국땅에서 지내야 했습니다.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하고, 이동해야 하고, 낯선 문화와 부딪혀야 했습니다.
삼계탕과 갈비탕을 소개할 때마다 "영양가가 풍부하고 남성 스태미너에도 좋다"는 설명을 반복했더니, 나중에는 그분들이 먼저 "오늘 삼계탕 먹으러 가자"고 할 정도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K-푸드가 세계적으로 통할 수 있다는 신호가 있었는데 그 혜안이 없었습니다. 아쉬운 부분입니다.
축구의 국가대표 선수단 이동 동선을 관리하는 개념인 팀 베이스 캠프(Team Base Camp, TBC)가 있습니다. TBC란 대표팀이 경기 기간 동안 훈련하고 숙박하는 근거지 도시를 의미하며, 이 도시의 음식과 문화가 선수들의 컨디션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저는 그때 그 역할의 일부를 경험했고, 음식 하나가 팀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TV 앞에서 경기를 보는 분들도 개최도시를 미리 알아두면 몰입도가 달라집니다. 멕시코시티의 아스테카 스타디움이 어떤 역사를 가진 곳인지, 과달라하라가 마리아치 음악의 본고장이라는 사실이 배경에 깔리면 화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뉴욕 경기라면 타임스스퀘어의 응원 열기가 상상이 가고, 밴쿠버 경기라면 스탠리 파크와 바다가 어우러진 도시 풍경이 눈앞에 그려집니다.
축구가 파는 건 경기 90분이 아니다
FIFA의 수익 구조를 보면 이 대회의 본질이 보입니다. FIFA의 핵심 수입원은 중계권료(broadcasting rights fee)와 상업 파트너십(commercial partnership)입니다. 여기서 중계권료란 전 세계 방송사가 FIFA에 지불하는 경기 방영 대가를 의미하며, 개최 도시가 많고 다양할수록 더 많은 시간대에서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어 단가가 올라갑니다.
FIFA 공식 발표에 따르면 2026 월드컵의 총 수익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됩니다(출처: FIFA). 북미 3국이라는 거대한 소비 시장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으면, 치킨, 맥주, 자동차, 통신사, 배달 앱 등 광고 슬롯을 차지하려는 기업들이 한꺼번에 몰려듭니다. 스포츠 이벤트가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광고 플랫폼에 가깝습니다.
이런 구조가 일반 시청자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봅니다. 대회가 커질수록 방송 품질이 올라가고, 개최 도시 관련 다큐멘터리와 여행 콘텐츠도 풍부해집니다. 스포츠 관광(sports tourism)이 활성화되면서 실제 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도 더 많은 정보가 쌓입니다.
스포츠 관광이란 스포츠 이벤트를 계기로 개최 도시를 방문하거나 그 문화를 간접 체험하는 관광 형태를 말합니다. 한국관광공사 자료에 따르면 스포츠 이벤트 연계 관광은 일반 관광 대비 체류 기간과 1인당 소비액이 높게 나타납니다(출처: 한국관광공사).
경기장 안에서는 공이 굴러가고, 경기장 밖에서는 나라와 기업과 도시의 계산이 함께 굴러갑니다. 그 판을 이해하면 경기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2002년 부산 서면 골목에서 보신탕집을 안내하며 "세상에는 다양한 음식 문화가 있다"고 놀라워하던 프랑스 관계자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축구는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2026년 북미 3국을 무대로 다시 열리는 그 축제에서도 경기 결과 못지않게 도시의 풍경과 음식과 사람들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개최도시를 하나씩 공부해두는 것, 그것만으로도 응원의 깊이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