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에 한우를 올리면 그게 여전히 서민 음식일까요. 기생충을 처음 봤을 때 저도 그 장면에서 잠깐 멈칫했습니다. 단순히 배고파지는 장면이 아니라 뭔가 불편한 감각이 스쳤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불편함 자체가 봉준호 감독이 의도한 것이었습니다. 짜파구리 한 그릇에 이렇게 많은 것이 담겨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짜파구리가 계층 상징이 된 이유
짜파구리는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합쳐 끓이는 인스턴트 라면 조합입니다. 1980년대부터 이어져온 한국인의 야식 문화에서 탄생한 레시피로, 정식 요리라기보다 집에서 즉흥적으로 해먹는 서민적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여기에 한우 채끝살이 올라갑니다.
채끝살이란 소의 등 뒤쪽에서 채취하는 부위로, 마블링이 고르고 육질이 부드러워 스테이크용으로 선호되는 고급 부위입니다. 100g 기준 시중가가 3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하는 식재료입니다.
이 두 가지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대비는 단순히 시각적인 것이 아닙니다. 사회학에서는 이를 소비의 계층화(consumption stratific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 쉽게 말해 같은 물건이나 음식도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계급이 드러난다는 의미입니다.
박 사모가 갑작스러운 귀가 중에도 아무렇지 않게 "한우 짜파구리"를 주문하는 장면은 그 자체가 소비의 계층화를 보여주는 연출입니다.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부자들의 세계를 엿볼 때 느끼는 그 묘한 감각이 떠올랐습니다.
평소 내 월급으로는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소비 방식을 가까이서 목격할 때의 그 기분, 설레기도 하고 약간 씁쓸하기도 한 감정 말입니다. 영화는 그 감각을 음식 한 그릇으로 정확하게 포착해냈습니다.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019년,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심사위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것이 바로 계층 간 갈등의 보편성이었습니다. 짜파구리 장면이 그 보편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담아낸 장면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긴장감을 요리하는 봉준호의 연출 방식
영화에서 짜파구리가 만들어지는 장면은 단순한 요리 과정이 아닙니다. 영화 이론에서 말하는 서스펜스 몽타주(suspense montage)의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서스펜스 몽타주란 서로 다른 두 장면을 교차 편집하여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편집 기법으로, 알프레드 히치콕이 즐겨 사용한 방식입니다.
면을 삶고 스프를 넣고 소고기를 굽는 조리 시간이, 박 사장 가족이 비를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과 정확히 맞물립니다. 관객은 "짜파구리가 완성될까"와 "기택 가족이 들킬까"라는 두 가지 긴장을 동시에 안고 화면을 봅니다.
제가 직접 두 번째 관람을 했을 때 이 편집의 정교함이 훨씬 더 선명하게 느껴졌는데, 첫 번째 관람에서는 그냥 긴장되는 장면으로 지나쳤던 것들이 사실은 치밀하게 계산된 구조였음을 알게 됐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인터뷰에서 음식을 인물의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비언어적 서사 장치(non-verbal narrative device)로 활용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비언어적 서사 장치란 대사 없이 시각적 요소만으로 인물의 내면이나 상황을 전달하는 연출 방식을 뜻합니다. 짜파구리가 단순히 먹음직스러운 음식으로 보이지 않고 뭔가 묵직한 무게감을 가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볼 때 현진건의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이 겹쳐 보였습니다. 행운이 연달아 터지지만 그 뒤에 더 큰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구조, 그리고 독자나 관객은 그것을 알면서도 주인공만 모르는 상태에서 느끼는 아이러니. 짜파구리가 완성되어가는 그 순간도 그렇습니다. 음식은 완성되어가는데 상황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람돈이 된 짜파구리, 그리고 직접 만들어본 결과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2020년 이후, 해외에서는 짜파구리를 람돈(Ram-don)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람돈은 라면(Ramen)과 우동(Udon)의 합성어로, 영화 번역 과정에서 외국 관객이 짜파구리를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이후 미국, 유럽 등지의 SNS에서 람돈 인증 사진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짜파게티와 너구리의 해외 수출량도 눈에 띄게 증가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인스턴트 라면 두 종류의 국제적 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음식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문화적 기호(cultural sign)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줬습니다. 문화적 기호란 특정 물건이나 행동이 그것 자체의 기능을 넘어 특정 문화나 집단을 상징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가 직접 한우 짜파구리를 만들어봤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맛 이전에 그 과정이었습니다. 채끝살을 버터에 굽고, 두 가지 라면을 동시에 삶고, 물을 딱 맞게 남겨서 비비는 과정이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습니다. 그러면서 이걸 박 사모가 갑작스럽게 요청했다는 설정이 다시 한번 와닿았습니다.
준비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건 그냥 "라면 하나 끓여줘"와는 전혀 다른 무게입니다. 짜파구리를 만들 때 핵심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면은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동시에 삶되, 너구리가 조금 더 걸리므로 먼저 넣는다
- 물은 끓이고 나서 3~4 숟가락 정도만 남기고 버린다. 너무 건조해지면 면이 뭉친다
- 채끝살은 버터를 두른 팬에 미디엄 레어로 굽는 것이 가장 좋다. 완전히 익히면 육즙이 빠져 면과 어울리지 않는다
- 고기를 올리기 직전 후추를 뿌리면 향이 훨씬 살아난다
직접 먹어보니 한우의 육즙이 짜장 소스 특유의 기름기와 섞이면서 풍미가 예상보다 훨씬 진해졌습니다. 라면인데 라면 같지 않은, 그 묘한 경계감이 영화가 말하려던 것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맺는말
기생충을 두고 "어느 사회에나 계층이 있고 그 안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남에게 기대어 살더라도 그것이 일방적인 착취가 아니라 서로의 잉여를 활용하는 방식이라면 단순히 기생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짜파구리처럼,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이 섞였을 때 오히려 더 좋은 맛이 나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영화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면, 이번엔 짜파구리를 직접 끓여놓고 보시길 권합니다. 화면 속 음식과 같은 것을 손에 들고 있을 때, 그 장면이 전달하는 감각이 달라집니다. 제 경험상 이 방법이 봉준호 감독의 연출 의도를 가장 체감하기 좋은 방법이었습니다.